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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와 카리스 – 심미적 그리스도인과 윤리적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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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 전에 그리스도인들의 무감각을 경계하느라고 그 종류를 두 가지로 나눈 사람이 있었습니다.

해리 E. 포스딕(Harry Emerson Fosdick)이라고 하는 미국의 침례교 목사님인데, 이분이 이미 1900년대 초반에 이렇게 그리스도인을 두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바로, ‘심미적 그리스도인’(aesthetic Christian), ‘윤리적 그리스도인’(ethical Christian)입니다.

심미적 그리스도인이란 그저 예배를 드리고, 교양 있는 말씀 듣고, 마음을 평안하게 하려고 교회에 나오는 그리스도인입니다. , 예배에 참석하면 감정이 순화되고, 교양적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하여 종교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반면에, ‘윤리적 교인은 예배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은혜를 입고, 깨달음과 결단을 합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으며 그대로 살기 위하여 결단하고 행동하려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포스딕 목사님의 이런 분류는 당시 미국 사회의 배경을 두고 그 방향성을 생각하여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분의 비유대로 압력을 가하지 않고 물을 수증기 등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헌신과 훈련이라는 압력이 없이는 아무것도 제대로 이룰 수 없다는 방향만큼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이들에게 더욱 필요한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이런 구분을 모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그것을 따르는 것은 또한 심미적 그리스도인과 윤리적 그리스도인의 차이를 드러내는 문제입니다. 곧 개인이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느냐 하는 포스딕 목사님의 구분이 교회 또한 어떤 교회가 되느냐 하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곧 심미적 그리스도인과 윤리적 그리스도인의 구분에 관한 내용 조차도 심미적 교회처럼 좋은 교양의 말씀으로 선포하고 끝난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따라야 할 방법들에 관한 고민들이 없기 때문에 결국 윤리적 그리스도인을 언급하는 것조차 심미적으로 행하고 끝나는 교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는 오늘날 우리를 기만하고 속이는 함정의 문제가 하나 들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곧, 카타르시스와 카리스를 구별하지 않는 문제일 것입니다.

카타르시스는 감정 정화이고, ‘카리스는 은혜라는 헬라말들인데, 이 두 말이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낱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주창된 카타르시스 이론은 비극으로 인한 정서적 장애로부터의 해방을 말합니다. 종교적으로는 슬픔과 참회를 통한, 감동을 통한 눈물로써 자기 장애를 극복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것으로써, 소산작용 또는 해제반응(abreaction)이 있는데, 억압된 감정을 행위나 말로써 다 풀어버리는 것입니다. 일종의 스트레스 발산책이지요. (이 현상을 보면, 고백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고백만으로 끝나서, 결국 자기 고백과 삶이 괴리를 보이는 비윤리적인 문제가 여기서 생기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과 카타르시스는 같은 종류입니다.

하지만, 은혜가 스트레스 발산책입니까? 아닙니다.

 

참된 은혜는 좋은 말을 듣거나 정서적으로 정화를 하는 단순한 감동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의 정서적 감동(emotional moving)이고, 성경이 말하는 감동은 영감(inspiration)입니다.

그러니, 그런 위장된 것들에 스스로 기만당하지 않고 정직하게 문제와 잘못을 직면하며 나아가서 결단을 이루게 하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열매라고 합니다.

 

우리는 카타르시스와 카리스를 생각하면서, 두 가지를 다시 잘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는 좋은 말로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선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점과

둘째는, 그런 타락한 양심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카타르시스를 카리스와 혼동케 하는 사탄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강단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감동적인 선포나 아니면 코메디처럼 웃게 만드는 희극적인 선포들을 즐거워하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이고, 설교자들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트렌드에 맞추어 성공을 꾀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되면, 그 모든 것이 결국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깨달음과 채찍을 통해 결단하고 변화를 일구는 길을 포기하게 만들어서 그 모든 폐해는 다시 각 그리스도인에게로, 그리고 교회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우리 주님의 말씀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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