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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개인의 야망적 신앙이 가문의 몰락을 가져온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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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글부터는 묵상에세이집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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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의 부자 가문 가운데 하나였던 록펠러 가문은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신앙적으로 거의 추앙의 대상이 되다시피 인용되곤 하였던 사례입니다.

교회 강단에서 록펠러는 그의 십일조 헌금에 대한 성실함의 표본으로 자주 언급되곤 하였는데, 그 가문이 부자였기 때문에 많은 교인들의 헌금을 강조하는데 기복적으로 쓰이곤 하였습니다.

특별히 모성 감성을 자극해서, 록펠러 어머니가 록펠러에게 십일조를 잘 지키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고, 록펠러가 그것을 정확하게 실천하기 위하여 수퍼컴퓨터를 사용해서 방대한 회사의 복잡한 십일조 계산을 할 정도였다는 소문까지 더하여, 한국교회에서는 록펠러 닮기라는 왜곡된 열풍이 불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부를 축복으로 받았다는 록펠러가 그 이면에서는 자기 회사인 스탠더드 정유회사를 키우기 위해서 상대 정유회사를 불법적으로 파산하게 하고, 자기 회사의 노조 운동을 하는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구사대를 조직해서 주 방위군으로 위장시켜서 어린아이를 포함한 50여명을 학살하기도 한 사실들은 그리 잘 소개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소위 1914년의 러들로 학살사건입니다.

 

그런 사건 후에 정치적인 유착을 통해서 독과점을 계속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면서 부를 축적하여 록펠러 재단은 엄청난 부를 독식한 것입니다.

물론 그런 과거를 덮기 위하여 자선재단을 운용하고,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린다는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록펠러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고, 루즈벨트 대통령은, ‘아무리 재산을 많이 기부한다고 할지라도 그의 악행을 덮을 수는 없다고 일침을 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록펠러 닮기를 시도하는 크리스쳔 기업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그런 브랜드입니다. 벌써 몇 십 년 전인 당시 십일조를 130억 이상씩 낸다고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불공정 거래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직을 파행적으로 행하는 사례를 외면했던 경우들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영웅주의적 신앙을 추구하느라고 외면하여 버렸던 부정직하고 불의한 일들이, 아무런 분별 없이 그대로 좋은 크리스챤이라는 이미지 뒤에 감추어질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만과 야심의 부패를 하나님이 그냥 두시겠습니까?

록펠러의 둘째 아들인 넬슨 록펠러는 자기 가문에서 대통령이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여 포드 대통령의 지명으로 부통령이 되었습니다.

일견, 하나님의 뜻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최고의 축복의 위치에 올라선 것 같았지만, 이런 부통령 자리에 대한 지명은 사실상 하나님의 심판이 되었습니다.

부통령에 대한 청문회에서 자기 집안 재산과 록펠러 재단의 비리와 부정, 그리고 스캔들이 밝혀지면서, 록펠러 가문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록펠러센터가 일본의 미츠비시 사에 매각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록펠퍼 가문의 이야기는 개인의 신앙적 야심과 비윤리성이 가문의 몰락을 가져온 사례로 쓰일만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록펠러 가문에 대한 이야기이고, 먼 남의 나라의 사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우리들의 이야기로 생각해 보아야 할 반문이 있습니다.

록펠러 가문의 십일조 신앙을 강조하고 그를 신앙적인 영웅으로 만들어 인용하였던 그 수많은 설교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적어도 록펠러를 그렇게 인용하였던 이들이 자신들의 판단에 분별력 없었던 것이며, 그런 무분별한 왜곡을 자처하게 되어 한국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일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의 말을 하는 것을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일은 저같은 소시민적인 목회자도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사과여야 할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런 현상은 이미 우리 자신 안에도 록펠러과 같은 영웅적인 삶을 선망하는 야심이 가득하고, 세상적인 지위와 권력, 이름을 얻으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그런 패러다임 때문에 그렇게 세상적으로 많은 것을 성취하지 못한 이들을 신앙적 열등감에 빠뜨리고, 더 나아가 그런 세상의 경쟁 대열에 신앙의 이름으로 함몰하게 만드는 비성경적인 말씀들이 가득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서 정직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참다운 교회를 세워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는 세상적인 성공을 부추겨서 그 부수물로 크게 세워지고 사람들을 많이 모은 교회가 아니라, 비록 정직하게 사느라고 세상적인 성취를 덜하였지만, 하나님을 정직한 방법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우리의 세상 가운데서의 삶을 하나님 앞에 곧고 정직하게 세워가는 일을, 세상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일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믿음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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