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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라의 나무가 십자가로?

나눔N누림 1 16151 0


출애굽기1523-25절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에 이르러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많은 설교가들이 이 나무가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이니 우리가 현실에서 마라와 같은 쓴 물을 만날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합니다저에게는 마라의 나무가 십자가로 변하는 것은 너무 큰 비약이어서 설명이 필요합니다.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1 Comments
나눔N누림 2018.07.10 15:55  
친구신구 2012.11.15 23:37
모세가 던진 나무가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설교 내용들은 일종의 영해라 불리는 해석법을 따른 데서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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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이 지나쳐서, 무엇이든지 비슷하기만 하면 갖다 맞추려는 일종의 지나침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영해라는 말은 영적인 해석이라는 뜻이니, 자신들이 영적으로 풀었다고 하면서 권위를 세우면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집사님 말씀대로 비약이 심한 경우라 할 수 있지요.


 

이런 비약적 영해에는 이런 오류가 있습니다.

A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는 맞습니다. B라는 사실도 그 자체로는 내용이 맞습니다. 그런데 A를 B라고 연결할 때에는 아주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연결해서 특정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데, 대개가 그 관련 근거가 부족한 것이지요. 이런 경우를 비약이라 합니다.

 


이 본문의 경우에도 나무라는 공통분모도 있고, 인생에서 쓴 물을 만날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말도 개별적으로는 맞지만, 그걸 연결할 때에, 그러면 다른 곳에서 나오는 모든 나무가 그런 경우가 되는지 어떻게 구별하느냐 하는 객관성이 남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쓴 물을 만났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것을 고쳐나간다는 교훈은 매우 유익한 것이므로, 마치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나무를 쓴 물에 던져 먹을 만한 물을 얻었던 것 “처럼” 우리도 인생의 쓴 물을 만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을 통하여 생수를 얻자는 식으로, 이렇게 설교할 수 있다면 지혜로운 것이겠지요.

하지만, 모세가 던진 나무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예표라고 말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성경을 영적으로 푼다고 하면서 이런 오류들을 범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들으면서 ‘아, 내가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려주니, 저 분이 대단한 권위가 있는 분이구나!’ 하면서 몰려들게 되지요.

성경을 정확하게 푼다기 보다는, 다른 쪽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 본문은 앞뒤 문맥을 따라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진짜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나무를 던지게 하신 것에는 다른 뜻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할 수 있는 나무는 바로 모세가 애굽에서 하나님의 명을 받아 사용하던 나무 지팡이였습니다.


그 모세의 나무 지팡이야말로 애굽의 ‘단’ 물을 피로 변하게 하던 지팡이이고, 홍해의 물을 가르던 나무 지팡이였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 물을 다스리던 경우에 쓰였던 경우이고, 바로 오늘 마라에서도 물을 다스리기 위하여 쓰여진 나무가 바로 모세의 나무 지팡이를 회상케 하는 것이지요.


이런 해석과 연결이 분명한 것은 다음의 내용들 때문에 그러합니다.


첫째로, 25절에 모세가 백성들의 원망을 듣고 ‘부르짖었다’ 하는데, 이 히브리말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의 고통에 지쳐 ‘부르짖었다’던 말입니다.


둘째로, 애굽의 나일강 물은 애굽에게 생명을 선물해주는 ‘단’(히, ‘마타크’) 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단 물을 피로 변하게 하실 때 쓰셨던 것이 바로 모세의 나무(지팡이) 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전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번 이미 그렇게 하셨다면, 그 다음번에도 이스라엘을 위하여 반대로 ‘단’ 물을 내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도록 하심입니다.


셋째로, 그렇게 앞서 두 번의 물을 다스리던 나무 지팡이를 마라의 쓴 물에서 회상케 하신 이유 가운데 또 하나가, 창세기의 창조기사가 사실은 창조사실 자체의 전달보다도, 사람들에게 혼돈을 가져다 주는 ‘깊음’(히, '트홈')의 물 등에 하나님이 질서를 세우셔서 다스리시고, 자신의 피조물들이 더 이상 그 위협의 두려움에서 떨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하셨다는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 때에도 물이 '깊음'의 샘이 터지며 올라왔다 하는 표현이 바로, 하나님이 창조때에 일정한 경계내에 가두어 놓았던 혼돈의 세력이 사람이 그 창조질서를 따르지 않자 그 제어를 풀고 사람을 위협하러 올라왔다는 경고인 것입니다.

게다가, 지난 번 욥기 성경퀴즈대회때도 살펴보셨지만, 리워야단이 바다의 세력으로 등장하는 내용이 있었듯이, 세상에 혼돈을 가져오는 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시편이나 여러 성경에서 ‘물결을 밟으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되고, 나중에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시면서 바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프리젠테이션하신 것이다는 내용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물은 늘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다스리심을 보여주신 사건이지요. 여기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는 사람을 위협하는 환경은 결국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으니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교훈을 보게 된 것이지요.


넷째로, 그 다음 구절인 26절에 있는 내용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뒷받침합니다.


26절에는,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이 기록되어 나오지요.

- 출 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혹시 이 구절에서 왜 그냥 모든 질병이라 하시지 않고,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이라 제한적인 것처럼 말씀하시는지 이상해 보이지 않던가요?


또한, 마라의 쓴 물을 해결해 주시고는, 일견 뜬금없이 애굽의 질병에 관한 말씀이 왜 나오는지도 말이지요.


우리는 실제로 문맥과 상관없이 그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내용만 관심 갖지만,

이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던진 나무를 보고, 모세의 손에 들려주었던 나무 지팡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애굽에서 행하셨던 질병의 이적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쓴 물도 치료되는 것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될 것이다라는 교훈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마라의 쓴 물에 던진 나무는, 아니 하나님이 모세로 하여금 던지게 하신 나무는 예수님의 십자가라기보다는, 결국 이스라엘 배성이 그것을 보고, 모세의 나무 지팡이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신지 잊지 말고 어떤 경우에라도 믿음올 신뢰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시려 하신 조치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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