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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사를 죽이신 것은 너무한 것 같습니다.....

나눔N누림 1 21446 0


사무엘하6:6과 역대상13:9에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다고 하나님이 그를 쳐서 죽였다고 했습니다소가 날뛰어서(키 샤메투(셰마토하바카르:for the oxen let it fall; dropped it; almost overturned it) 궤가 떨어질려고 하니까 엉겹결에 웃사가 궤를 붙들은 것이 아닌가요고의가 아닌 것 같은데 그를 죽인 것은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무엘하 제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다(대상 13:1-14; 15:25-16:6, 43)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1)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웃사를 침이라는 뜻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역대상 제 13 

하나님의 궤를 옮기다(삼하 6:1-11)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초원이 딸린 성읍에 사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뭇 백성의 눈이 이 일을 좋게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새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러한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더라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11 여호와께서 웃사의 몸을 찢으셨으므로 다윗이 노하여 그 곳을 베레스 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12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르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13 다윗이 궤를 옮겨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메어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1 Comments
나눔N누림 2018.07.10 16:01  
친구신구 2012.11.15 23:32
웃사의 죽음에는 상당한 이유와 숨은 까닭이 있습니다.


집사님, 참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조금 설명이 길지만, 그래도 너무 귀한 뜻이 담겨져 있으니 찬찬히 살펴보시지요.



언뜻 보기에 웃사의 죽음은 미필적 실수를 죽음으로 갚게 하시는 엄한 처사로 보이지만, 그건 한글 성경으로 보았을 때이고, 겉으로 보기에만 그러합니다.


웃사가 그런 식으로 죽게 된 원인은 직, 간접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법궤의 절대적 권위 때문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로 상징되었기에, 누구라도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다룰 수 없었으며, 비록 잘못하여 비의도적으로 그렇다 할지라도 법궤를 범접하면 죽음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전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여다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70명이 죽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하신 것은, 법궤를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엄위의 최고의 자리에 놓으셔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무의식적으로라도 인식하고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본 자는 그 거룩함과 영광의 엄위함 때문에 생명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는데, 비록 사람이 어쩌다가 잘못해서 (그런 경우는 불가능하겠지만)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고 하면, 비의도적이라 하더라도 죽임을 면할 수 없었던 것과 이치가 같았습니다.



둘째, 다윗의 잘못 때문입니다.


다윗은 유다지파의 예루살렘 왕에서 이스라엘 12부족 모두의 왕으로 등극하게 되자, 성급히 나머지 11 부족들을 통합하려고,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시려 한 것입니다.


곧, 종교, 정치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는데 법궤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고, 하나님은 이러한 처사에 응하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전 생애에 걸쳐 행한 세번의 실수 가운데 첫번째 실수였던 셈입니다.


다윗이 정치적으로 법궤를 모시려 한 것이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는, 웃사의 죽음 이후의 다윗의 행보가 노여움으로 이어진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뿐더러,


법궤는 반드시 레위인만이 멜 수 있었는데(신 10:8, 대상 15:2), 다윗은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의논하지 않고, 군대 조직과 의논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그 위엄을 드려내려 했습니다.


인간적인 위엄에서는 군대의 호위만한 것이 없겠지만, 하나님을 위한다 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위엄을 끼워넣겠다는 마음이었던 것이지요.


나중에 다윗은 오벳에돔이 복받는 것을 보고서야, 이것을 깨닫고는 레위인에게 법궤를 메게 하고, 제사도 따로 드리며 법궤를 모셔오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결국 웃사의 죽음으로 자신의 첫번째 시도가 보기좋게 실패하게 된 것인데, 비록 웃사의 잘못은 별개라 할 지라도 정확히 그 시간에 웃사의 잘못이 일어나서 다윗의 심사가 다 드러나고, 그 시도가 실패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이 점에 대해서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자유가 있으시기에, 사람의 종교적, 정치적 계획에 맞추어 이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첫번째 사실과 연관해서, 웃사 자신의 잘못입니다.


웃사는 그 집에서 법궤를 20년간 모셨던 아비나답 제사장의 아들 제사장인데, 법궤를 모시는 자세가 좋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7절의 우리말의 "잘못함"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샬")은 단순히 비의도적 실수를 말하지 않는다는데서 분명해집니다.


그것의 어원은 아카드어에서 "경멸"(셸루)에서 온 것이고, 아람어에서도 또한 "태만"(셸라)이라는 단어도 연관되어 있어서, 웃사가 단순히 한 번의 비의도적 실수를 한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법궤에 대한 마음가짐과 자세가 불량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반면에, 얼떨결에 법궤를 모시게 된 오벳에돔은 유다 출신이 아닙니다. 오벳에돔이란 이름은 "에돔의 종"이란 뜻으로 블레셋의 수도 중 하나인 가드 출신의 용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오벳에돔이 6개월밖에 법궤를 모시지 않았음에도, 하나님은 그 집을 복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가 받은 복은 역대상 26장에 나와있는데, 그의 자손손 62명이 모두 훌륭한 성전의 문지기 반열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올랐던 것입니다.


오벳에돔이 법궤를 모신 까닭으로 축복을 받은 것은 다름아닌 경외하는 마음 때문인 것입니다.


그는 제사장도 아니고, 이스라엘인도 아닌데, 얼떨결에 법궤를 모시게 되었으니, 얼마나 두려움이 컷겠습니까?


그는 모든 일에 삼가하여 정성을 다하여 법궤를 모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섭리는 분명하지요.


이스라엘의 정통 제사장 집안에서도 그 마음과 자세가 분명치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반면에 이방인이고, 제사장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흡족하게 하시면, 그 견줌을 비교할 수 없이 축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어떠신가요?


본디, 하나님께서 너무하심이란 말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말이지요? 사람 보기에 그런 것일 것입니다.


아직도, 웃사의 죽음이 하나님께서 너무하신 처사일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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