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쿤 올람'과 배움
유대인에게는 ‘티쿤 올람’이라는 신앙 문화가 있습니다.
‘티쿤 올람’이란 히브리말로 ‘세상을 고친다’라는 뜻입니다.
세상을 고쳐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미완성 상태(불완전 상태가 아니라)로 창조해 주셨고, 그것을 완성시켜가는 제 2의 창조 역할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도록 위임해 주신 인간에게 맡겨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재창조, 또는 제 2의 창조라는 개념 때문에 유대교와 기독교가 극명하게 다른 태도를 보였던, 패러다임의 차이가 드러나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19세기에 나왔던 다윈의 진화론 때문에 기독교계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원숭이의 후손으로 비하시켰다고 흥분하며 비난하였지만, 유대교에서는 진화 또한 세상을 개선하는 또 하나의 창조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앞선 글에서 말씀드린 ‘구제’가 이 ‘티쿤 올람’의 방편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티쿤 올람’의 근본 정신에는 더욱 더 중요한 본질과 바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배움’이 그 근간이라는 점입니다.
‘티쿤 올람’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배움’이 절대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티쿤 올람’의 바탕 정신으로 배움에는 다음의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배우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배우는 것은 기도를 올리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히브리말로 ‘기도하다’라는 말(히트팔렐)은 ‘스스로 가치를 잰다’는 의미에서 온 말입니다.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는 일보다 하나님이 하시는 위대한 계획과 섭리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며, 그것을 배워서 알아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회당인 시나고그의 주요 역할이 바로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하는 곳으로서의 역할인데, 이런 가치관에서 비롯된 일인 것입니다.
셋째, 배우지 않고는 결코 세상을 고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제가 ‘정직은 정확성을 전제로 한다’라고 올린 글에 우리 교우 한 분이 ‘아는 만큼 정직할 수 있다’라는 답글을 달아주신 것이 있습니다.
참 지혜롭고 건강한 통찰인 것이 바로 이 티쿤 올람의 정신이 지향하는 근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