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개의 이야기
옛날 옛적, 1만 2천년전, 빙하기 말기에 인간과 늑대는 최대의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인간도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였고, 역시 늑대도 그러하였는데, 인간과 늑대가 동일한 먹이를 쫓으며 경쟁하게 되자, 늑대들은 결국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냥감도 부족하고 새끼들의 생존률이 높지 않게 되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늑대들은 전체가 모여서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가다가는 늑대라는 종족 보존이 불투명하니, 차라리 우리보다 더 강하고 가장 생존확률이 높으며, 또 자기네들을 돌봐줄 지적 능력이 있는 인간에게 의탁하여 그들과 함께 동거하면서 생존확률을 높여보자는 것이 의제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집단에서 이런 문제가 다루어질 때 일어나는 논쟁이 늑대집단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경쟁자인 인간에게 의탁하는 것은 야생 늑대로서의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라는 논리가 한 편에 있었고, 반대편에는 사람의 사냥을 도와주고 그들의 보호를 받게 되면, 그들과의 교감을 통해서 훨씬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논리가 충돌했습니다.
결국 이런 논제는 타협이 불가능하여, 늑대들은 각자 자신의 판단대로 갈라지기로 하였고, 그 결과 한쪽은 야생 늑대로 살아갔고, 다른 한쪽은 사람에게 의탁하여 개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늑대와 개의 생존율을 비교해 보길 바랍니다.
아마 정확한 비교는 차치하더라도, 야생 늑대는 종류별로 멸종위기에 처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이야기는 몇 가지 기초사실에 근거하여 제가 꾸며낸 우화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변화가 생존율을 높이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며,
둘째는, 경쟁과 대립보다는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협력이 더 풍요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과,
마지막으로, 한 존재는 그를 능가하는 존재 아래 보호함을 입어야만 평안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고난주간을 맞는 십자가의 길에서 생각을 해 보면, 이렇게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변화, 자신을 깨어서 넘어가는 일 등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영적인 생존률을 높이는 일이며,
십자가 앞에서 질시나 비교, 경쟁을 넘어서서 서로 돕고 사랑하는 것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능가하는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과 교감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고 평안한 길이라는 점입니다.
십자가는 응답을 필요로 하는 길입니다. 그 응답은 즉각적이고도 가부간의 대답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각자 자신을 위하여 세워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는 응당 대응해야할 마땅한 응답이 필요한 법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에 각자 앞에 세워진 십자가 앞에서 어떤 응답의 문제가 있는지 살필 줄 아는 은혜에 이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