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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의 수평이동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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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는 교인들의 수평이동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에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교회 근처로 이사를 오셔서 지역교회에 함께 하기를 원하시거나, 또는 율법주의나 기복주의 등으로부터 복음으로의 고민, 부적절한 교회에 대한 고민을 지니고 있어서 그 신앙 양심과 영혼을 살리기 위한 분들에 한하여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위의 두 가지 조건에 부합하여도 제한적인 조건이 붙는 경우도 있습니다. , 다른 교회에서 임직을 받으신 분들은 목사와 면담하여 우리교회의 방향에 수용적일 때에만 함께 하도록 위임을 받고 있습니다.

 

개척을 한 교회이고, 그 성장 과정상 교인 하나라도 더 아쉽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한 준비된 일군인 임직자 하나가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교회에 큰 힘이 되는지를 잘 알고 있지만, 저는 교회 사역위원들과 논의하여 이런 방향을 설정해 두었고, 십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실제로 그런 상황들이 여러 번 있는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잘 지켜온 원칙 같습니다.

당장 눈에 보기에는 아쉬울 수 있기도 하지만, 이런 절차들을 둔 덕분에 교회가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라온 것 같아 후회되지 않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눈에 보이는 분명한 이익을 포기하는 대가로 그 원칙을 지키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수평이동이 기본적으로 비윤리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야구나 운동 선수들은 동업자 정신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선수들끼리 같은 무대상황에서 흥행을 도모하는 큰 시각에서, 자기 팀만의 승리를 위해서 선수의 생명에 위협을 끼치는 플레이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의식이지요.

투수가 타자의 머리를 향해서 던지는 빈볼이나, 수비수의 무릎을 향하여 스파이크를 들고 돌진하는 주루플레이나, 또는 반대로 하는 경우들이 당장의 승리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그것은 전체적인 면에서 손해가 되고, 동시에 넓은 의미에서 프로무대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흥행을 도모하는 동료라는 의식을 무너뜨리는 비윤리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업 윤리나 경제 정의를 말할 때에도, 대기업이 문어발식 경영을 하거나, 지역의 구멍가게를 죽이는 물량 독점 사업을 하는 것도 비윤리적인 것으로 이야기 됩니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선진국에 비해서 이런 경제 정의나 윤리 실천에 대한 의식이 약하여서 많이 허용되는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의식있는 이들은 그런 문제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구조적인 환경을 파괴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정도만 해도 세상의 윤리 기준이 어떤지를 알 수 있습니다만, 서글프고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도 이런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일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그것이 수평이동을 허용하는 문제입니다.

 

대형교회가 급성장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수평이동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급성장하는 교회들이 예그들의 회심으로 모두 채워졌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건강한 교회를 표방한다 하더라도 급성장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윤리적 무감각을 미필적으로 용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수평이동이 프로야구 선수들의 동업자 정신에 비추어도, 그리고 세상의 기업 윤리에 비추어 보아도 부끄러운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눈감고 모른 척 하면서 교회가 수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윤리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일에 무감각한 가장 큰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조차 그런 큰 수자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질 때 즈음 주변의 교회당을 알아보는 중에, 우리는 그 지역에 교회당 매물이 여럿 나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어 확인해 보니, 그 전에 네임 밸류가 있는 한 목사님이 그 지역에 개척을 하게 되자, 교인들이 1년에 1천명에 가깝게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런 수자의 상당수가 결국 그 지역 교회들의 교인들이었던 것이어서, 그리로 빠져나간 교인들이 있는 작은 교회들은 유지 자체가 힘들어 결국 교회 문을 닫고 교회당을 매물로 내어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런지 10여년이 지난 시점에 이제 그 교회가 교계의 문제가 될 정도로 사고 교회가 되어서, 그런 자기네 교회 모습에 실망하여 나와서 개척을 하려는 교인들이 모인 곳에 어쩌다가 개척상담 아닌 상담을 하러 가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제일 먼저 물었습니다. 그분들이 그 교회가 시작할 때에 모두 예수님을 처음 믿게 되어서 그곳의 교인이 된 것인가, 아니면 그 교회 목사님의 네임 밸류와 교회 이름에 대한 엘리트 의식이 있어서 자기 교회를 버리고 그 교회 교인이 된 것인가를 물었더니 대부분이 후자였다 합니다. 그렇기에 바로 그분들 때문에 주변의 여러 지역 교회들이 문닫은 점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 가를 물은 적이 있었는데, 몰랐다는 분들도 있고, 더러는 나름대로들 충격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거기에 제가 한 마디를 더 붙여 두었습니다. 바로 여러분 때문에 교회와 목양의 길을 접은 목회자들과 흩어진 같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하고요... 그리고 작금의 사태는 바로 그런 탐욕들이 결합한 결과물일 뿐이고, 그런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 자체가 한국교회의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어떤 교회든 제대로 개척하여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요...

 

이런 일들은 이 지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신도시의 경우에는 어김없이 일어나는 일인 게지요.

 

문제는 이렇게 신앙적인 비윤리성에 대한 무감각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치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는 매머드 교회의 숫자나 그 교인 수들이 늘어날수록 전체 기독교인의 수는 줄어든다는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교회가 수평이동을 눈감고 허용하는 일 자체가 교회의 윤리적 무감각성을 전제하는 일이고,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비윤리성으로 그대로 직결되기 때문에, 결국 제 살 깍아먹기가 되고, 사회로부터는 교회나 교인들이 더 이상 존경받지 못하는 상황, 곧 자신들보다도 더 비윤리적인 모습들로 치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수평 이동은 기본적으로 우리 교회만 성장하면 그만이라는 윤리적 무감각의 발현입니다.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만, 자신만 복받고 좋으면 다른 이들이나 이웃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지극히 세상적인 자기중심적인 태도들을 그 세상이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싫어함은 바로 하나님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수평이동에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하나님 나라의 법칙과는 정반대인 세상적인 윤리와 논리가 들어 있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교회를 경쟁대상으로 치부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시각과 하나님 나라의 법칙에 얼마나 위배되는지 전혀 마음 쓰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공교회에 대한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하나의 교회로, 그 안에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 역시 한 하나님의 한 자녀들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그런 모습과는 전혀 다른 셈이지요.

 

우리는 수평이동이 신앙 윤리에도 어긋나고, 세상적인 윤리 의식에도 어긋나며,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우리 자신의 고백에도 어긋나는 매우 잘못된 관행임을 잊지 않았으면 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그리스인들, 교회들의 윤리적 무감각에서 일어나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헤아려서, 더불어 함께 살피며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길을 놓치는 일이 없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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