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상,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라’
우리는 상을 받는데 익숙합니다. 그래서, 일등 만을 바라보는데 익숙합니다.
말로는 정직한 꼴찌를 칭찬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내 삶에서 인정하는 일은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받는 상급도 큰 것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결과, 성경에 나오는 상에 관한 언급들도 어느새 비교적 상급론으로 잘못 이해되곤 합니다.
그 중 마 25장의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상을 봅시다. 다섯 달란트 맡은 자와 두 달란트 맡은 자는 그것을 배로 늘려 주인이 올 때 칭찬과 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흔히 여기서 우리가 상으로 알고 있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하지만 이것은 상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더 큰 “일”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건 일이요 사역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린 다음의 세 가지 분명한 가치관을 배워야 합니다.
첫째, ‘큰 일’은 일일 뿐이지 상이 아닙니다.
우린 모두 ‘큰 그릇’이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상이 아니라 일일 뿐입니다. 그래서 ‘큰 일’을 하는 사람도 자랑할 것이 없고, ‘작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자기비하를 할 일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 큰 일을 한 자나 작은 일을 한 자나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상은 모두 똑같습니다.
상은, 그 뒤에 나오는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섯 달란트 남긴 자나, 두 달란트 남긴 자나 똑같이 받은 상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에는 급이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상은 있어도 상급은 없습니다.
셋째,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상이 되는 사람이 복된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을 입으면 그 사랑하는 존재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일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무언가 물질적으로, 댓가로 받아야 상이 되는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 나라 안의 가치관에 익숙치 않은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에 없는 것을 들라면, 그 중 하나로 경쟁과 비교를 꼽을 것입니다.
경쟁과 비교는 이 세상의 가치 기준입니다. 그것도 부패된 본성에서 나온 죄성의 어두운 그림자이지요.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표상입니다.
이곳에서부터 경쟁과 비교를 없앨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그런 가치관을 없애주실 능력이 있음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