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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 야망에 관하여

나눔N누림 0 14068 0

이제는 교회에서도 아주 자연스레 사용하는 ‘비전(vision)’이라는 말은 영어에서 온 말입니다. 

국어 성경에서 ‘환상’, ‘이상’ 등으로 번역되는 이 영어 말은 라틴어의 ‘보다’(video, videre)라는 동사의 과거분사형(visum > visio)에서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 본래 의미는 ‘(수동적으로) 보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것이 성경적으로 맞는 개념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보고자 해서 본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보여지게 된 것’이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보여주었고, 그것을 보게 된 사람이 비전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비전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것을 단지 수동적으로 보게 된 것이지, 보고자 해서 본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비전을 이야기할 때 요셉의 꿈을 인용하기를 즐겨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요셉의 꿈일까요? 

 

요셉은 자신이 그런 꿈을 꾸고 싶어서 꾼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꿈을 받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요셉 자신이 후일에 한 고백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창 45:7).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섭리 중 하나로 사용된 과정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그것이 요셉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라고 고쳐 말하고 싶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그 꿈을 받게 된 것 뿐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순종한 것이지요. 

따라서 비전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주어로 나타나야 합니다. 

사람의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서 오늘날 우리들의 착각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비전과 야망이 혼동되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이루고자 하는 야망과 야심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는 말에 슬쩍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비전을 갖는 것이 중요하고 또 다른 의미에서 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소리들을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비전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게 될 때, 자신의 야망을 나타내면서 비전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교회의 팽창이나 다른 면에서의 확장을 꿈꾸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슬쩍 병합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의 야심을, 우리의 야심을 하나님의 비전 안에 끼워 넣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필요한대로 쓰시는 계획의 일부가 되어 그것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혹시 우리는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우리의 야심을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혼동하는 부분은 없는지 곰곰이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늘 그 고민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여러분은 저와 함께 이 어려운(?) 문제 앞에서 고민을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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