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공동체 : 화(和) 와 동(同)에 대하여
공자는 논어의 14장에서 군자에 관한 내용 중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화(和)는 "함께 할 수 있음"이며, 동(同)은 "같게 됨"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 뜻은, "조화는 이루되, 같게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의 의미입니다. 저는 이 의미를 달리 생각해 봅니다.
"같지 아니하지만, 조화할 수 있다." 건강한 공동체는 바로 이 원리가 내적으로 보여지는 공동체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서로 다름을 용납하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일은 언제든지 이런 다른 생각들이 모여 있을때에 그것이 발전의 에너지가 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구성원들이 자원적으로 정말 구색을 모두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일하면서 정말 필요한 은사들이 어쩌면 그렇게 곳곳에 적절히 갖추어져 있는지 하나님께 너무나도 감사할 뿐입니다.
다만, 그 "다름-같지 않음" 때문에 평화가 깨질 수는 없습니다. 평화는 하나님이 우리 각자를 모두 다르게 만드셨다는 사실과, 그것은 각자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며, 그 삶 중에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같은 논어 편에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라 했습니다. 똑같으면서도 화합하지 못하는 것이 소인배의 모습이라고 본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일을 하다 보면 실수할 수 있고, 또한 부족한 점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법을 더욱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같지 않음에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 안에 이미 그러한 모습들의 씨앗이 뿌려져 있음을 느낍니다.
그것이 잘 꽃피고 열매 맺어 가는 과정이 오늘 우리의 시점인 것 같습니다.
그 열매가 잘 열리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 교회가 "예그"(=예비그리스도인)을 위한 교회로 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조직이든지, 제가 지도자로 있는 곳이나, 또는 협력하는 위치에 있을때나 지도자 그룹으로서 만일 그 두 사람이 완전히 똑같기만 하다면, 저는 둘 중의 하나는 굳이 꼭 필요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발전과 변화는 제가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그것을 건강한 공동체의 발전적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나눔이요, 그러면서도 그 다름 때문에 서로가 아프게 되지 아니하고, 하나가 되어가는 것은 우리의 누림일 것입니다.
저는 서로 다름을 언제든지 환영하고, 이미 그것을 누리고 있으며, 또한 우리 공동체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도 함께 있습니다. 여러분을 향하여, 아니 우리를 향하여 기대합니다.
우리의 다름이 우리를 더욱 즐겁고 아름답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메타 교회의 초석은 바로 여기서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