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의 기도 순번
우리 교회의 주일아침예배 기도는 목회자로서 제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한 번은 동료 목사님들 모임에서 참지 못하고 자랑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주일아침 예배의 ‘교회를 중보하여 드리는 기도’ 순서(소위 ‘대표기도’라 부르는)에는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고백이 있으며, 저와 우리 교우들은 그 시간 너무나도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말이지요. 게다가 상투적인 내용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는 것을 이야기 했더니 모두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놀라는 눈치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일러 드렸지요.
임직자들과 관계없이 서리집사 이상의 직분을 받은 모든 교우들을 가나다 순으로 돌아가며 누구라도 할 수 있도록 했더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옛날처럼 기도를 가르쳐주거나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지도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우리 교회 주보의 주일예배 순서 밑에는 아예 ‘교회를 중보하여 드리는 기도는 자원하시는 분이 섬기는 순서입니다’라고 안내까지 해놓았다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당장 기성교회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또한 저희같이 새로 시작한 교회도 거의 힘들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아직 한국교회의 정서에서는 안된다는 부정적인 반응들이 많았습니다.
그분들의 고민을 이해할 만합니다.
전통적으로 주일아침 예배의 중보기도는 장로님들, 또는 여의치 않을 경우 안수집사님, 권사님들이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져 왔고, 그것은 대단한 ‘특권’(?)의 표시였음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늘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의 연조가 깊은 분들의 기도에 왜 순수함이 적으며, 왜 상투적인 내용을 벗어나지 못하고, ‘거룩’을 말하지만, 삶에 기반한 영적인 감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지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교우 중 한 분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주일아침예배 기도는 장로님들만 해야 하는 줄 알았고, 또 늘 ‘거룩하신’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법에 정해진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우리 교회의 기도를 보니 이렇게 해도 아무런 문제도 없을뿐더러,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주일아침예배 기도에 나오는 고백과 표현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공동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로를 향하여 더 깊은 관계들을 이루어 가도록 해주세요.”
“우리 밖을 향한 아름다운 손길들에 더욱 큰 힘을 주세요.”
“우리가 이웃과 지체들을 더 축복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우리의 삶에 변화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과 사역은 고백이 이끄는 삶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을 눈으로 보는 시간들입니다. 저는 나중에 교회에 장로가 세워져도, 이런 아름다운 고백들을 장로들만의 전유물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고백들을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을 기대하는 것조차 즐겁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