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리스트의 부요함
오래 전에 쇼팽의 일대기에 관한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인상깊게 기억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쇼팽이 자신이 작곡한 “영웅” 폴로네이즈 악보를 들고 당시 이미 명성을 얻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리스트를 찾아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었습니다.
피아노가 두 대 있는 방에서 쇼팽의 악보를 처음으로 본 리스트는 곡의 뛰어남에 놀라서 연주를 시작하고, 뒤이어 들어온 쇼팽과 인사를 하게 되는데 여전히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는 계속됩니다. 이때 다른 한 대의 피아노에서 쇼팽도 동시에 연탄을 하게 되고, 리스트가 경의의 악수를 청하자 두 피아니스트는 한 손으로는 각기 다른 파트를 연주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경의의 악수를 나누는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그렇게 쇼팽과 리스트가 극적으로 만났다는 것이 음악사에 실제로 알려진 이야기인지, 영화로 만들면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쇼팽은 리스트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그의 적극적인 후원과 소개를 통해 파리 음악계에 화려한 등장을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헝가리 출신의 프란츠 리스트는 당시나 지금이나 최고의 피아노 명수라는 칭호를 얻고 있는 훌륭한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리스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가 언제나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세워주는 일에 그 마음을 아끼지 않은 '부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 동시대의 음악가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하고 지원해 주었으며, 음악가를 파리
사교계에 추천하고, 또 후원하는 일들을 즐겨했습니다.
쇼팽의 등장에 질시를 담아서 경계하려 했던 칼크브레너나 자신의 음악을 지키기에만 급급해서 다른 이와 후대에 더 기여할 수 있는 자원들을 폐쇄시켜 버렸던 파가니니와는 달리 리스트는 자신의 음악을 개방해주고 다른 이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음악적 도움을 받거나 빌려 쓰는 것에 자유했습니다.
그 중에 잘 알려진 것이 오페라 작곡가로 유명한 바그너와의 교류인데, 그 교류 과정에서
바그너가 자신의 음악을 표절하는 것을 기꺼이 묵인해 주어서 자기 작품이 자신의 음악으로만 남지 아니하고 바그너를 통해서 더 확장되는 것을 용인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바그너의 음악에는 상당부분 리스트로부터의 표절이 들어있으며, 이 점이 바그너의 음악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든 요인이 됩니다.
실력은 있지만 작품을 알릴 길이 없었던 음악가들을 후원해 주고, 세워주며 음악가로도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던 리스트는 나중에 그의 평생의 소원을 따라 당시의 하품 성직자의 길에 들어서게 는데 이 또한 우연은 아닌 듯 싶습니다.
다른 이를 인정해 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후원까지 해 주는 일, 이것은 정말 우리의 신앙을 삶의 영역에서 열매맺어 가는 일 중 하나입니다.
작게는 가정에서 남편(아내)과 자녀들을 인정하고 세워주는 일, 또 우리 교회의 긍휼사역에서부터 시작해서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하여 다른 이를 후원하고, 격려하며 세워주는 일, 더 나아가 교회가 지역을 세워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다른 이의 삶을 부요케 해주며
동시에 자신을 부요케 하는 아름다운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