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와 교우의 관계에 관하여
아래의 글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 목회자와 교우 간의 본질적인 관계성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지만, 모든 목회자가 그래야 하는 원칙도 아니고, 그렇지 않은 목회자들을 비교하는 기준이 되어서도 아니될 것입니다. 단지 저의 개인적인 성향이라고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한국교회에서 이름이 꽤나 알려져 있는 목회자들의 형태를, 특별히 교우들과의 관계에서 있어서 바라볼 때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 셋은 모두에게 조금씩 있으며, 그 중 어느 하나가 더 두드러져서 나타나는 경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전형적인 권위 형입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교회에서 거룩한 모델로 추앙되다가 점점 더 신격화되어 신의 대리자 정도가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보통 소왕국의 군주의 위치를 점하는 것이 일반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목회자의 권위 앞에 복종하고 눌림 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경우 목회자와 교인의 관계는 권위와 복종이라는 관계로 형성됩니다.
두 번째는 카리스마 형입니다. 어떤 특별한 분야에서 지도자적 자질을 발휘하여 추앙받는 경우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목회자를 존경하고 우러러 보게 되지요. 특별히 말씀에 있어서 그렇거나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여겨져서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목회자와 교인의 관계는 존경과 추종이라는 관계로 형성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스타 목회자 형입니다. 이런 경우는 사람들의 특별한 시선을 끄는 능력의 소유자들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유명한 것과 그럴듯한 이미지에 쏠린다는 것을 천부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경우들이지요. 사람을 끄는 매력을 지녔거나 또는 그것을 잘 계발하는 능력이 있는 경우입니다. 사람들은 그 본질보다는 이미지를 추종하게 됩니다. 이 경우 목회자와 교인의 관계는 스타의식과 팬이라는 관계로 형성됩니다.
대개 이 세 가지의 경우들은,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유명하거나 멋있어 보이거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대리 만족을 주는 지도자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인들은 그런 목회자를 따라 수평이동하게 되고, 교회에서 목회자의 이름이 유명해지며, 교인들과 목회자와의 관계는 ‘바라보기에 좋은 그대’로 남게 되지요. 그런데, 제게도 위에서 말한 세 가지의 경향성과 기질이 모두 어느 정도씩은 있습니다. 또 그런 기질들을 십분 활용해서 ‘이름 있는’(이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지도자가 되고픈 야심과 야망도 있지요. 때로 성공주의 시각에서 보면, 그러한 목회자들의 형태는 성공을 위한 일종의 모델이 되는 것이 제 주위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일단 유명하면 성공한 목회자이며, 더 나아가 능력있는 목회자로 평가하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현실 감각보다도, 그런 분명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보다도, 그보다도 제게는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비록, 그 중요도에 대한 판단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것은, 목회자는 교인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개념적인 친구가 아니라 삶을 함께 나누는 진짜 친구 말입니다. 저는 여러분 위에 목사의 직책을 내세워 군림하지 않으려 합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친구라 부르겠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허물없이 지내며, 진짜 친구처럼 되기 위해 저의 삶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어떻게 무엇을 나눌지는 다음에 말씀드리겠지만, 우선,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을 제게 나누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 교회에서는 기존의 목회자 스타일에서 저를 자유롭게 해 주십시오(저와 함께 많은 시간들을 보내신 분들에게는 부탁드리나 마나이겠지만, 우리 안에 들어온지 얼마 안된 새가족들과 우리 밖의 예그들을 위해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에서 여러분과의 관계가 결코 ‘바라보기에 좋은 그대’로 남지 않기를 원합니다. 대신, ‘가까이 하기에 좋은 당신’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