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어 본문으로 설교 준비하기
앞서 박창환 학장님을 식사로 모신 이야기를 말씀드렸었습니다. 박창환 교수님은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학장님으로 계셨고, 그래서 여러 강의도 직접 들었던 분입니다.
그 학장님께서 한국교회의 역사에 대하여 자서전의 형식을 빌어서 책을 하나 내시려고 원고를 탈고한 후에 신학교 출판사에 넘겼다 합니다.
그런데, 출판사 측에서는 이 내용은 출간하기가 힘들겠다 하여 반려하였다 합니다. 한국신학계의 원로이시고 장신대 학장을 역임하신 명성에 비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이유는 한국의 대형교회 지도자들의 부적절함을 개별적으로 지적하는 내용들이 신랄해서, 반발을 사거나 아니면 아직 살아있거나 유족들이 있는 상태에서 고소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한국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들이 무너져 가는가를 여쭈었습니다. 제가 평소 생각하던 바로는 저들이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이기에 그 설교가 삶과 분리되는 문제가 당연히 있을 것이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더 나아가 그 설교 자체에 담긴 성서적인 본문 왜곡이나 패러다임 왜곡들이 심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학장님의 고찰과 비교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장님의 말씀이, 바로 원어 본문으로 설교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신약학자이셨고, 신약학 중에서도 언어 쪽에 전문이셨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자연스럽다 생각하였지만, 저는 그 말씀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습니다.
설교는 성도들의 믿음을 자라게 도우는 일이어야 하고, 시련과 문제를 극복하고 이기게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깨뜨리는 죄악된 습관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는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성경 말씀 자체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설교를 원어를 기준으로 말씀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다운 말씀이어야 거기에서 말씀의 능력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말은 원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설교는 전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어를 몰라도 진실하게 깨달은 말씀 한마디를 전하거나 삶이 뒷받침된 정직한 말씀을 전할 때에는 얼마든지 말씀의 능력이 그곳에 담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목회자의 설교는 하루 이틀, 한 두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새롭고 좋은 말씀을 찾아야 하는데, 너무 설교자 개인적인 경험 폭 안에서만 말씀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룰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보입니다.
더욱이 원어를 직접 살피지 아니하면, 본문의 원뜻이나 배경을 오해하여 그 왜곡된 기초 지식하에 메시지의 방향이 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설교에는 목표와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계획에는 무엇보다 정확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박창환 학장님의 경험을 소개하는 것은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년전 한 번은 한국교회 강단에서 돌고도는 성경 본문의 왜곡된 지식들을 추려서 모아놓은 것을 한 출판사에 출간 검토삼아 초고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출판사 측에서 역시 출간하기가 힘들겠다고 하였습니다. 꽤나 유명하신 목사님들의 설교집을 비판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원어 성경을 확인하지 아니하고 그저 유명하신 목사님의 설교에서 비롯되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왜곡된 지식들이 그리 많기에, 오늘날 원어를 기초로 해서 말씀을 준비하는 일이 더욱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심지어 낱말의 어원 풀이를 한다 하면서 전혀 엉뚱한 메시지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성경 본문의 원어를 제대로 연구하여 살피면, 여러가지 수사 기법이나 문맥, 배경이나 낱말 등에서 정확하고도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게 되고, 그러면 언제나 새롭고 깊은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설교는 종종 딱딱해 보이지만, 그러나 저는 우리 교회에서 교우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말씀은 그 자체로 귀한 능력을 담고 있으며, 그저 설교자는 그 정확한 말씀을 풀어서 전달하기만 해도 말씀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 오던 일인데, 그 가치가 새삼스러워 두서없이 정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