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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랑재후(螳螂在後) ②

나눔N누림 0 22288 0


앞서 사마귀에 관한 당랑재후라는 고사를 살펴보았으니, 이번에는 다른 관점에서 사마귀를 빗댄 이야기를 생각해 볼까 합니다.


사마귀를 영어로는 ‘praying mantis'라 하는데, 어원에 빗대어 우리말로 그 이름의 뜻을 풀어 쓰면 ‘기도하는 점쟁이’라는 뜻입니다. 서양에서는 사마귀가 앞발을 모으고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그 모양새가 마치 점장이가 점을 내기 위하여 기도하는 모습과 같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사마귀에 대한 다른 이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마귀를 빗대어 일컫는 한자 성어에 또한 당랑재후(螳螂在後)라는 말이 있어서 앞에서 묵상 소재로 소개하였는데, 그 뜻은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장차 그 뒤에 올 재화를 알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하여 나름대로 우스운 생각으로, 동양과 서양의 식견을 종합해 보면 사마귀는 한치 앞의 일도 맞추지 못하는 돌팔이 점쟁이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우리의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상태를 우리의 신앙의 열매라는 것에도 견줄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즉,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진정한 열매가 없는 상태라면, 바로 당랑의 재후와 같은 형국이라는 관점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 동서양의 사마귀 이미지를 겹쳐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모양새만 그럴 듯한 것과 정말로 능력이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습 속에 또한 이러한 차이가 발견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게 됩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여느 그리스도인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하는 모습은 언제나 보통의 그리스도인과 일반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에게 기도의 능력이나, 더 나아가서 정직성이나 삶과 일치하는 열매가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는 주일의 모습도 볼까요? 우리가 주일에 행하는 모든 행동을 보고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일이 되면 성경, 찬송을 들고 예배당으로 오기 때문입니다(요즈음은 스마트폰이나 스크린 덕분이 그마저도 들고 오지 않아서, 우리 교단에서는 성경,찬송 들고 교회오기 운동을 하자고 공문으로 내려오기조차 합니다). 그리고 와서 정한 시간에 예배 드리고 주일 활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모든 모습은 그리스도인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그리스도인으로 무슨 능력이나 열매가 있습니까? 그러한 겉모습 말고 우리는 우리를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더욱이 요즈음은 우리가 믿는다는 신앙과 우리의 삶이나 교회의 모습들이 괴리가 많다고 세상으로부터 지탄까지 받는 시대입니다.


이름만 그럴듯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그 외모로 아는 것이 아니요, 열매로 안다고 일러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 열매가 있습니까? 어떠한 열매를 보일 수 있을까요? 


그 열매는 가지가 온전히 나무에 연결되어 있을 때에 일어나는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과 기도가 우리의 신앙적인 모습과 온전히 연결되어 있기를 늘 고민하고 살펴야 할 것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돌팔이 점쟁이’ 당랑처럼,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도끼에 찍히어 불에 던지운다는 무서운 말씀이 한치 앞에 다가오는 것처럼 우리의 등골을 오싹하게 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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