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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랑재후(螳螂在後) ①

나눔N누림 0 21962 0


민수기 설교 모음집을 내기 위하여 원고를 교정하다 보니, 이 한자성어에 대한 소개글이 언급되어 있어 예전에 주보 어딘가에 올렸던 글을 정리하여 다시 올립니다.


어느날 제나라의 장자(莊子)가 활을 메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하게 날개도 긴 까치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날아서 멀리 있는 나뭇가지 위에 앉았습니다. 그 모양이 하도 이상해서 그것을 사냥하리라 마음먹은 장공은 까치를 노려보며 조심조심 다가갔습니다. 


활을 당기려고 보니까 까치가 무엇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까치의 눈길이 닿는 곳을 보니 풀숲 사이에 사마귀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귀는 또 나무 그늘에서 울고 있는 매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사마귀도 까치도 눈앞의 먹이에 정신이 팔려 자기가 죽게 되었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한심한 그 미물들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어 장자는 그만 활을 거두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 사나이가 몽둥이로 자기를 내리치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정을 알고 본즉, 까치를 따라가느라 정신없었던 장공이 남의 밭으로 들어가 쑥밭을 만들어 놓았던 탓이었습니다.


결국 사마귀나 까치나 장자 모두 똑같은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 


사마귀를 한자로 당랑(螳螂)이라 하는데, 당랑에게 이러한 뒤가 있었다 하여, 곧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장차 그 뒤에 올 재화를 알지 못하는 상태를 비유하는 성어로 ‘당랑재후’라 하고, 또는 당랑이 죽을 줄도 모르고 매미만 노리고 있다 하여, ‘당랑포선’, 당랑박선‘, 매미를 엿보고 있다 하여 ’당랑규선‘이라 합니다.


인간의 오감은 동시에는 하나의 대상에만 반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좀 느슨한 형태이긴 하지만 심리상태에서도 나타납니다. 어떤 하나의 사실에 집중하면 다른 사실을 생각하거나 느낄 여력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앞의 이익에 몰두하게 되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한계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을 심리학에서 쓰는 용어로 ‘게슈탈트’(Geschtalt)라 합니다.


탐욕이 인간을 망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계적인 연유에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출중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집중할 대상을 눈앞에서 찾지 아니하고 먼곳으로까지 시야를 확보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뒤에까지 인지권 안에 둘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된 사람입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내면 깊은 곳까지 정확하고 정직하게 살피는 능력일 것입니다.


범인은 어떠한 상태의 사람일까요? 그야말로 시야가 짧은 사람입니다. 돌이켜 자신의 뒤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시야가 넓고 안력이 좋다는 것은 반드시 세상살이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요.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 사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삶이 어찌 세상 생활과 신앙생활에 있어서 분리가 가능하겠습니까? - 우리 각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크고도 원대한 계획을 이 세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출중한 사람인 것입니다. 


바로 앞의 자질구레하면서도 별 가치가 없는 일들을 아무 생각없이 얻어볼려고 연연해 하는 모습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닐 모습이 못됩니다. 멀리 보고 널리 보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트이게 할 수 있는 모습들이 우리 안에 자주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조그마한 소망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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