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기에 좋은 그대'에서 '가까이 하기에 좋은 당신'으로.....
이 글 또한, 아랫글에 이어서 저의 주관적인 단상으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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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조직을 경영하고, 신격화된 존재로 부각되며, 그 카리스마에 의해 교회를 이끌기 시작하면, 그래서 소위 ‘스타목사’가 생겨납니다.
문제는 대중적인 스타들의 삶에서도 흔히 나타나듯이 그러한 ‘스타 목회자’는 내면의 고독에 갇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모습과 자신이 바라보는 모습이 이중적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정신 건강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이 진실한 자아를 상실하는 것인데, 바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 안타깝게도 목회자의 환경인 것이지요.
그래서, 어쩌면 교회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 중의 하나가 목회자일지도 모릅니다(정말 고독하신 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운 표현이어서 넓은 양해를 구합니다만....). 그리고 이러한 내면의 고독은 일반 교우들이 인지하든 못하든 위험한 길로 안내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 보고서는, 중간에 문제가 생기는 목회자들의 경우, 이들 중 누구도 ‘개인적으로 서로를 책임질 수 있는 깊이 있는 관계’(accountibility group)를 맺지 못하고 있었다는 조사를 보여줍니다. 이 ‘책임질 수 있는 깊이 있는 관계’가 오늘날 제가 겪어온 교회들의 경험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교우도 목회자와 그런 삶을 나누지 않고, 목회자도 교우와 그런 관계를 나누지 않지요.
교우는 목회자에게 더 가까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하고, 목회자는 교우가 가까이 오는 것을 일정선까지는 용납하지만, 더 이상은 손을 들어 제지하지요. 그래서, 목회자를 떠나 보내고, 목회자가 떠나기도 하는 경우들 모두, 서로 책임 없는 관계의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건강한 공동체가 아닙니다.그리고, 그렇게 공동체를 만들지 않으려면, 우리는 달리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제 목회 방향은 시스템이나 조직을 통한 관계가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지향적이기를 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교우들과 함께 만나서 식사 한끼를 나눌 여력이 없다면, 바로 그때가 우리 교회의 번식의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목회자와 교우가 그런 관계를 나누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건강한 관계지향적 공동체가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국 교회의 이면에는 전통 아닌 전통으로 흘러오는 가치관들이 있습니다.
대개 다분히 주관적이며, 비논리적으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것들인데, 그 중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목회자와 교인이 가까워지거나 허물없이 지내게 되면,상처를 입거나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 저는 그런 생각들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까이 함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관계이며, 권위를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이다!” 제게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그런게 있는지도 모르겠지만....^^)가 있다면 그것을 내려놓고, 제게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거리감이 있는 권위가 있다면 그것을 던져 버리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허물없고 부담없는 관계를 원할 때, 제가 그런 자리에 있기를 원하고, 저도 여러분들과 허물없고 부담없는 관계를 원할 때, 여러분이 제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도 서로를 향하여 부담없고, 허물없으며, 그렇게 서로를 잘 알고 지내면서도 서로를 향하여 존경과 신뢰가 있는 관계이고 싶습니다.
정말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