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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율법주의로부터의 해방

나눔N누림 0 14208 1


우리는 조상 전래로부터 또는 민족 집단적으로 알게 모르게 형성된, 뿌리 깊은 무의식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처럼 율법주의를 형성한 원인이 되기도 하고, 또 그런 율법주의와 결탁한 묘한 혼합적 신앙관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들을 잘 헤아려 보기 위하여 율법주의에 연결되어 있는 사고방식들을 용어 개념 설명으로 풀어보려 합니다. 분명히 해둘 것은 우리는 어느 교회나 개인들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다른 교회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매도하거나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도 그 점에서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오늘날 한국교회 전반에 뿌리깊이 내려 있는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이 무엇인지는 알아내고, 그에 대하여 복음적 신앙을 회복하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방향을 고민해 보려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다음의 내용들을 우리 자신을 점검하기 위한 관점에서 조용히 함께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율법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사고방식들 : 

- 율법주의 : 사람이 행동으로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뿌리깊은 무의식

- 공적주의 : 사람이 교회에 대해서나, 신앙적으로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하여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 

         예로, 헌금, 사역, 헌신, 봉사 등의 일로 인정받으려는 생각으로, 그것을 자신이 했다고 착각하는 경우들. 

-  자기 의 : 신앙적으로 자신은 바르며,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 예로, 자신은 기도생활을 열심히 한다거나,  

         성경에 대한 영적인 차원의 지식이 남다르다거나, 남의 눈에 보기에 그릇됨이 없다는 자기 판단 등. 

- 상급론 : 무엇인가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실 것이라는 생각. 하늘나라에서도 각기 상급이

    다를 것이며, 그것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경쟁적으로 열심히 해서 그 상급을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 엘리트신앙주의 : 내 믿음은 이러저러한 자의적인 기준에서 다른 사람들의 믿음보다 훨씬 낫다는 자기 판단. 

- 조건적 신앙 : 이 모든 율법주의를 한 마디로 표시해 줄 수 있는 신앙관.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나, 

       혹 다른 사람들도 저렇게 해 주어야 한다는 무의식 및 기복주의에 연결된 것. 

- 기복주의 : 우리 나라 전래의 토속적 샤머니즘과 결탁한 잘못된 신학. 잘하면 복 받고, 못하면 

      저주받는다는 강박관념으로, 더 나아가 복 받기 위하여 모든 것을 하려는 생각. 

- 성공주의 : 성공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그것이 기도의 응답이라는 생각. 

- 교회성장주의 : 오직 교회 성장을 최고 목표로 하여, 큰 교회가 되기만을 바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회 운영. 

- 목회편의주의 : 사람이 아닌 교회를 위한 목회. 심지어 목회자의 야심을 채우기 위한 목회자를 위한 목회

- 교회엘리트주의 : 우리 교회는 큰 교회이므로,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 교회라는 자만심에 빠지는 경우. 

- 경영마인드 : 경영 리더십을 통한 교회 조직 운영책, 조직을 위한 성장책을 목표로 하는 방향성.

- 성과주의 : 업적을 내세우게 하고, 그것을 위하여 경쟁을 부추기는 운영 방식 형식주의에 연결된 것. 

- 형식주의 : 본질보다는 눈에 보이는 형식을 강조하려는 경향성. 2천년 교회 역사는 복음과 은혜가 없을 때 교회가 늘 이런 예배형식이나, 교회 직제, 건물을 성물화 하는 등의 방향성을 지녔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줌. 

- 종교적 신앙생활 : 신앙생활의 행동 강령이나 규정, 직제 등이나 예배순서 같은 것을 잘 지키는 것을 경건의 본질로 생각하는 Outside-in의 신앙형태. 

- 신앙생활 권위주의 : 진정한 내적 권위가 아니라 외적이며, 형식적인 권위를 중요시 하고, 그것을 내세워 자기 인정을 받으려는 무의식적인 생각. 

- 비난과 정죄 : 위의 잘못된 원칙들을 가지고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며,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판단하려는 율법적 의식. 


이 모든 함정들의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잘못된 방향성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은 ‘복음에 서 있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이것이 일종의 뿌리 깊은 무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누구라도 그냥 내버려두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율법주의이며, 조금만 경계를 늦추어도 언제든지 누구라도 저절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율법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생각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내용이 부족해서 일어난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은혜가 무엇인지 잊을 때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은혜를 잊게 되면 자신의 자아와 그에 따른 야심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둘째, 본질보다 비본질적인 것에 주목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대개 눈에 쉽게 보이는 것은 비본질적이며 형식적인 측면이고, 잘 안 보이는 곳에 본질적인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랑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이해하게 하고 주목하게 합니다. 사람의 영혼 하나를 얻기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을 뒤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 주님의 사랑인 것을 기억해 봅니다. 우리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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